11세에 첫 주식을 사서 90대까지 같은 원칙으로 투자한 사람. 버크셔 해서웨이를 60년 가까이 이끌며 "가장 지루한 방식으로 가장 유명해진" 가치투자의 살아 있는 표준입니다.

| 출생 | 1930년 8월 30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
|---|---|
| 직책 |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2025년 주주총회에서 CEO직을 그레그 아벨에게 이양한다고 발표) |
| 스승 | 벤저민 그레이엄 (컬럼비아 경영대학원) |
| 스타일 | 가치투자 · 경제적 해자 · 초장기 보유 |
| 기록 | 버크셔 주당 시장가치 연평균 약 19.8% (1965–2023) vs S&P500 약 10.2% |
| 별칭 | 오마하의 현인 (Oracle of Omaha) |
1930년 오마하에서 태어나 11세에 첫 주식(시티즈 서비스 우선주)을 샀습니다. 신문 배달과 핀볼 기계 사업으로 모은 돈이 종잣돈이었고, 대학 시절 벤저민 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를 읽고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으로 가 그레이엄에게 직접 배웠습니다. 그레이엄이 강의에서 준 유일한 A+가 버핏의 것이었습니다.
1956년 고향에서 투자조합(버핏 파트너십)을 차렸고, 1965년 쇠락해 가던 섬유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권을 인수했습니다. 섬유업은 끝내 접었지만, 그 회사를 보험·철도·에너지·소비재를 거느린 지주회사로 바꿔 놓았습니다. 수십조 원을 굴리면서도 1958년에 산 오마하 집에 그대로 살고, 아침은 맥도날드에서 해결하는 일화로도 유명합니다.
버핏의 출발점은 그레이엄의 안전마진(가치보다 충분히 싸게 사서 틀려도 덜 잃는 여유)입니다. 여기에 동업자 찰리 멍거의 영향이 더해져 "그저 싼 회사"가 아니라 "훌륭한 회사를 합리적인 가격에" 사는 쪽으로 진화했습니다. 경쟁자가 침범하기 어려운 경제적 해자(브랜드, 전환 비용, 규모)를 가진 회사를 골라, 시장이 공포에 빠졌을 때 사고, 사업이 훌륭한 한 팔지 않습니다.
능력의 원(circle of competence) 바깥은 건드리지 않는 것도 원칙입니다. 닷컴 버블 때 기술주를 외면해 "한물갔다"는 조롱을 들었지만, 거품 붕괴 후 그 판단이 재평가받았습니다. 살 만한 것이 없으면 현금을 쌓아 두고 기다립니다 — 회사를 넘길 무렵 버크셔의 현금성 자산은 약 3,80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출처가 확인된 인용만 싣습니다. 인터넷에 떠도는 출처 불명 어록은 제외했습니다.
버핏 스스로 꼽는 최악의 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버크셔 해서웨이 그 자체입니다 — 쇠락하는 섬유회사를 감정적으로 인수해 20년을 끌었다고 후회했습니다. 1993년 덱스터 슈즈를 버크셔 주식으로 사들인 건 이중의 실수였습니다. 회사 가치는 0이 됐고, 지불한 주식의 가치는 수십억 달러로 불었습니다. 주주서한에서 본인이 직접 "재앙"이라 불렀습니다.
2011년 시작한 IBM 투자는 2018년까지 정리하며 패배를 인정했고, 2020년엔 항공주 전량 매도가 논쟁을 낳았습니다. 차이는 실수를 숨기지 않는다는 것 — 매년 주주서한에서 자기 오판을 공개적으로 복기하는 것이 버핏 신뢰의 원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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